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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untitled)

2025, 3D 프린팅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0×100cm,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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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준 (200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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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41회 무등미술대전 입선 

2024 광주 비엔날레, 광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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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업은 허구와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의 조건을 탐구한다.

 

이와 관련하여 확증편향이라는 심리적 경향이 있는데

 

확증편향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와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특정 식습관이 건강에 좋다고 믿고 있다면,

그는 그 믿음을 지지하는 기사나 연구 결과만 찾아보고 반대되는 근거는 신뢰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우리가 객관적 사실을 판단하는 과정에도 작용할 수 있다.

 

사실은 본래 증거와 논리에 따라 검증되어야 하지만,

확증편향이 개입하면 사람은 객관적 근거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하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객관적인 진실이라기보다,

개인의 신념과 심리가 일정 부분 투영된 해석일 수도 있다.


, 모든 판단이 왜곡되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주관이 개입된 믿음일 수도 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생각은 티라노사우루스의 복원도의 모습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영화나 책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보편화된 공룡의 이미지는 찰스 나이트 로버트

 

(Charles Robert Knight) 의 복원도에서 처음 제시된 이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다.

 

찰스 로버트 나이트 는 불완전한 화석 자료를 바탕으로, 현대 동물의 해부학 지식을 참고하여 상상력을 더해 공룡의 형태를 재구성했다.


그의 그림은 미국 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기관에 전시되며 대중적 이미지를 형성했고,

그 후 수많은 모방작이 나오며 오늘날 공룡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후 깃털이 묘사된 새로운 형태의 티라노사우루스 복원도가 등장했고,

이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찰스 나이트 로버트의 복원도에 공룡의 이미지가 자리 잡힌 상태였기에 

처음 복원도의 등장만으로 유튜브 SNS 등에서 웅장했던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은 사라지고 조롱으로 표현되는 등의 모습이 생성되게 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깃털이 달린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이를 부정하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제 의과대학 도서관의 수각류 공룡의 비늘 구조의 형태와 분포 내용을 통해

비늘과 깃털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거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한, 2002년 미국 몬태나 주에서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의 비늘로 된 피부 화석 등

그외에도 티렉스 피부 화석은 모두 비늘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근거들을 종합하면서 나는 깃털 티라노사우루스설을 부정할 수 있는 확신을 얻은 듯했다.

 

그러나 조사를 할수록 모순된 사실에 부딪혔다.

 

내가 신뢰하고 있던 비늘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미지가 사실은 과학적 관찰이 아닌,

찰스 로버트 나이트의 상상력에 기반한 복원도였다는 점이었다.

 

나이트는 당시 알려진 화석 정보를 바탕으로 티라노사우루스를 거대한 파충류처럼 복원했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처럼 CT 스캔이나 정밀한 분석이 가능하지 않았던 시대의 일부 단서에 의존한 상상으로 채운 복원도의 그림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신뢰하던 깃털 없는 티라노사우루스 역시 완전한 사실이 아니라,

불완전한 해부학적 추론, 그리고 한 화가의 해석과 상상력이 더해진 가상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내가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던 탐구는 객관적 진실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 싶은 사실을 확인하려는 과정이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결국, 깃털이 있든 없든 두 복원도 모두 불완전한 증거와 인간의 해석이 만들어낸

상상된 사실이었으며

 

이를 통해 나는 사실을 규정하는 과정은 객관적 근거가 아니라

우리가 믿고자 하는 믿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나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나는 아기공룡 둘리라는 캐릭터를 화석화하는 방식을 통해 

사실과 허구의 관계와 사실이라고 믿는 조건을 시각화한다.

 

둘리는 한국에서 실제 주민등록증이 발급될 만큼, 현실과 창작의 경계에 존재하는 상징적인 캐릭터다.

나는 공룡 복원도의 상상을 기반한 허구적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창작을 기반으로 한 대중적 캐릭터인 둘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화석은 과거 생물의 유해나 흔적이 지층 속에 굳어 형성된 것으로, 과학적으로는 실제 생명체의 존재를 증명하는 물리적 증거로 여겨진다.

 

나는 이러한 화석의 과학적 상징성과 둘리의 문화적 상징성을 결합함으로써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흔드는 작업을 한다.

 

나의 작업 속에서 둘리는 만화 속 이야기가 끝난 뒤, 현실의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공사 현장 노동자로 재탄생한다.


1986년 겨울, 그는 인간도 동물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으며 차가운 시선 속에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신분 때문에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하던 그는 결국 


지인의 소개로 안전 규정을 무시한 공사장에서 일하게 된다.


처음 두 달은 불안과 패배감 속에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점차 같은 처지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를 얻는다.


그들과의 작은 연대는 둘리에게 삶의 의미와 온기를 되찾게 했다.

그러나 19872, 혹한의 새벽 공사 중 무리한 공기 단축으로 지반이 붕괴되어 콘크리트 더미가 떨어졌다.

둘리와 동료 열 명은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빙하 속에서 깨어났던 그에게, 현실에서는 두 번째 기적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안전사고로 사망한 둘리의 사건은 신문 기사로 보도된다.

 

이처럼 둘리의 서사와 모습은 실재하지 않은 허구적인 복원도의 개념을 상징하며

동시에 사고 현장에 남겨진 둘리 화석은 물리적 사실의 형태인 화석의 개념을 상징한다.

 

사고로 인해 화석이 된 둘리의 모습을 표현하고 3D 프린팅을 사용하여 화석의 형태를 재현한다.

실제 사건처럼 보이도록 가상의 신문 기사를 제작하여 배치함으로써

 

사실 판단 유무의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의 중간 지점을 보여주고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것의 불안정함과 그 믿음이 구성되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우리가 믿는 사실이 결국 객관적 진실이 아닌 믿고자 하는 개인의 믿음에 달려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