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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환경 속, 주어진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면서도 정작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각자가 느끼는 다양한 무거운 감정은 마치 바다 깊은 곳에 잠긴 내면의 모습과 닮아 있다.
많은 이들이 목표를 향해 쉼 없이 그 기대치에 만족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다 목표 성취 후 끝내 공허함만 남을 때가 많은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새로운 목표로 덮으려는 행동을 많이 해 스스로 타협한다고 한다.
목표를 위해 좋지 않은 것까지 스스로와 타협하려는 것이 항상 도움이 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치열한 노력 끝에서 남는 것은 성취의 기쁨보다, 그 목표가 사라지는 순간 ‘존재의 방향’을 잃는 것이다.
사람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때로는 스스로에게 큰 기대를 걸고 감정이나 휴식을 뒤로 미루곤 한다. 노력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잘 아는 나’보다 ‘이루어야 할 목표가 먼저인 나’가 더 중요해지면 자신의 한계나 불안을 외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감정을 밀어내고 목표만을 보고 달린 끝에는 성취의 기쁨보다는 ‘그 목표가 사라진 뒤 홀로 남겨진 나’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기필코 오는데, 그때 찾아오는 공허함은 단순 피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감정으로 인해 방향성을 잃게 하는 혼란에 가깝다.
피땀 흘려 노력한 끝에 얻은 성취의 기쁨이 마음속 무게로 바뀐 듯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했을 때 기쁨은 짧고, 잠시 뒤 큰 공허함이 몰려온다고 하는데, 이것은 성과를 성과로 덮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내면의 감정’을 회피하는 행동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위험한 건 이것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취를 위해서는 남보다 앞서야만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과 타협하며 스스로 덮은 기쁨, 허탈, 지침, 안도 등 복합적인 감정들을 해결하지 않고 뒤로 미루는 것이다.
피와 땀으로 노력한 끝에 얻은 성취의 기쁨이 오히려 마음의 무게로 바뀌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쳤을 때 우리는 잠시의 환희를 느끼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감이 밀려온다.
그 순간 느껴야 할 안도나 기쁨 대신 ‘이제 다음엔 뭘 해야 하지?’라는 불안이 먼저 고개를 든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내면의 감정 회피’라고 부른다.
기쁨이나 피로, 허탈함 같은 감정을 충분히 느끼기보다 곧바로 다음 목표를 세워 덮어버리는 것이다. 감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런 방식을 ‘성실함’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 정도면 행복해야 한다’는 말 속에서 진짜 내 감정은 설 자리를 잃는다. 남보다 앞서야만 의미 있다고 믿는 분위기 속에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일은 곧 약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설득한다. “괜찮아, 더 잘하면 돼.” 하지만 그렇게 미뤄 둔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성취의 순간에 느껴야 할 기쁨이 오히려 불안과 피로로 바뀌고, 우리는 ‘이루는 일’보다 ‘이룬 뒤의 공허함’을 견디는 데 더 많은 힘을 쓰게 된다.
결과를 향해 달려가던 길이 어느새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심해 속 생명체들은 빛이 닿지 않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한다. 그 생명체들처럼 자신이 처한 각기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누군가는 스스로 빛을 내고, 누군가는 눈을 잃으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다른 생명체를 앞서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과 타협하는 자신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그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견디고 살아가는 힘을 보여준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감정, 성향, 능력을 숨겨두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할 때 공동체는 더욱 균형 있는 모습으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른 방식은 서로의 약한 모습을 보듬어주고 지탱해주는 하나의 축이 된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기계 안에 오래되고 망가진 부품이 있을 수 있는데, 감정도 숨기면 일시적인 균형은 맞춰지더라도 금방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개인이 본래의 모습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전체가 단단하게 유지되는 가장 강한 기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바닷속 생명체가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듯 우리는 일그러지고 완전하지 않은 얼굴 속에서 비로소 ‘나’를 마주하게 된다.
물결에 흔들려 형태가 뒤틀린 모습은 오래도록 억눌러 온 감정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형된 자아의 흔적이다.
기쁨, 슬픔, 허탈함, 허무함은 처음의 형태 그대로 남아 있지 못하고 흩어진 조각처럼 흐트러지지만, 그 모습을 인정하는 순간이야말로 내면으로 올라서는 첫걸음이 된다.
겉으로는 ‘성취’라는 이름으로 완성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균열이 있고 감정의 파편들이 흩어져 혼란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파편들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바라보는 과정에서 조각들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며, 결국 진짜 ‘나’의 형태가 드러난다.
수면 위 일렁이는 얼굴들(행복한 나, 불안한 나, 외로운 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이 겹겹이 겹치며 완벽하진 않아도 나를 이루는 진정한 모습이 된다.
나는 이 일렁임 속에서 스스로를 수용하고, 그런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목표를 이루기 이전에 이미 우리들의 존재는 가치가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을 따라야 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태어난다.
사회의 기준에 의해 스스로와 타협하고 그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내려놓기도 한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목표에 실패할 때마다 ‘너무 높았나?’ 하며 기준을 조금씩 낮추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당초의 꿈은 희미해지고 생계를 위한 일만 남아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다 보니 원래 내가 바라던 목표는 뒤로 밀리고, 돈과 현실에 적응하는 쪽을 선택하며 스스로를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달리다 보니 정작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은 채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결국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존재의 가치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결말이 공허함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속 감정들 그리고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깨달음을 얻는 모든 것이 진짜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
그것이 존재를 증명하는 가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보고 조금이라도 공허한 감정을 목표를 위해 덮어두고 있지 말고, 그 감정과 마주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이 더욱 단단해지고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